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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와르 명작 영화 추천> 신체에 관하여 : 이스턴 프라미스를 봐야하는 세가지
    미디어 MEDIA/Movie_영화 2021. 1. 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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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 ? 우리는 진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독립적으로 정의 내릴 있을까?

     

    단순한 느와르를 생각했다면 당신은 생각보다 깊은 생각에 빠지게 것이다.

    영화는 2007 엄청난 호평 속에서 화려한 주목을 받은 감독 그리고 반지의 제왕으로 최고의 스타로 올랐음에도 자신의 연기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비고 모텐슨이라는 배우의 환상의 조합이다.

     

     

    다소 자극적인 폭력적 장면만 참을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명작이다. 그러면 영화를 봐야 한다면 이유를 세가지만 적어보겠다.

    첫번째, “문신” with 메멘토

    메멘토는 우리에게 정말 어려운 영화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어렵지 않지만 어려운 영화다.

    메멘토는 문신은 기억이다.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문신은 언어이다.

     

    우리는 문신을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문신은 고대의 인간들 사회에서부터 시작한 하나의 표현 욕구라고 생각할 있다. 지워지지 않으면 나의 피부에 원초적 본질에 달라 붙는다. 우리의 정체성을 구현화 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이 만약 문신 새긴다면 어디에 무엇을 새길 것인가?

    그것은 당신의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것인가 혹은 진짜 자기 내면의 무엇을 표현하는 것인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주인공은 문신을 통해 사회 내에서 계급을 드러내고 자신의 삶의 행적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자신에 대한 증명서이고 이력서이다. 그것을 통해 그는 조직과 결합하거나 이용한다.

     

    메멘토에서 문신은 무엇인가? 기억해야 될 사건 혹은 사실이다. 그는 문신을 통해 기억 못 하는 자신과 대화한다. 문신은 그 자체로 소통의 창구이고 주인공의 심리적 흐름이다.

     

    이렇게 두 영화는 문신을 통해 무엇과 소통하고 자신을 인지할 것인가에 대한 비교를 통해 다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사회와 소통하고 메멘토는 마음과 소통한다.

     

     

    두번째, 폭력의 거장 데이빗 크로넨버그

     

    Every sin leaves a mark.
    모든 죄는 상처를 남긴다.

    영화의 슬로건이다.

    죄는 무엇이고 상처는 무엇일까?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대해서

     

    누구든 크로넨 버그라는 감독과 친숙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는 강한 매력을 신체라는 매개를 통해서 느낀다. 그의 작품에서 신체는 터지고 뭉개지고 변화하거나 흘러내리기도 한다. 문신은 어쩌면 가장 그중 고상한 신체 변형이다.

    그의 작품에서 세개의 바디로 시작한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첫 번째는목이 잘리는 체첸 갱스터의 신체, 두 번째는피를 흘리는 임산부의 신체, 세 번째는그런 임산부의 피를 흠뻑입고 태어난 연약한 신체까지..이 신체들 모두 그들의 개인이 어떻게 다른 존재 혹은 집단과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어려운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여 정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신체, 배신한 체첸 갱스터의 신체, 그의 시체를 찾은 경찰들은 그의 개인정보 대신에 그가 무슨 마피아고 계급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한다. 이는 곧, 주인공과 면밀히 연결된다. 주인공은 이 갱스터의 개인적인 정보를 모두 잘라내는 장본인이다. 사실 주인공도 정부를 위해 일하는 첩자로써 자신도 죽었을 때는 결국 이 배신자와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안다.전설적인 장면 목욕탕 싸움씬에서 자신의 몸으로 폭력을 받아들임으로써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신체, 더 좋은 삶을 위해 러시아를 떠나 런던으로 온 임산부는 자신이 꿈꿨던 곳에서 잔혹한 러시아 마피아에게 이용당하고 아이를 베게된다. 임산부는 또한 그가 당한고 본 것을 모두 일기장에 기록하였고 그것을 여주인공에게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게 된다. 그 임산부를 강간한 마피아 두목은 여주인공이 일기장을 들고 다시 찾아옮으로써 자신이 주었던 상처를 자신이 짊어지게 된다. 결국 파멸의 끝으로 가는 매개다.

     

    세 번째 신체, 마피아의 아들의 피를 이어받은 임산부의 아이는 피에 흠뻑 적신채 태어난다. 이것은 피로 연결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보여준다. 아이와 비교대상으로는 마피아 두목의 아들이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를 숨기고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희생한다. 유전적으로 연결된 그의 도망칠 수 없는 굴레에 대한 개인의 절망이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개인은 없다.

    복잡한 연결관계가 꼬리를 무는 영화다. 개인은 결국 스스로 개인일 없고 전체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슬로건 모든 죄는 상처를 남긴다.”라는 말을 되새기자면 모든 사람들은 개인을 희생시키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씁쓸한 결론을 남긴다.

     

    세 번째, 최고의 장면을 위한 열연 비고 모텐슨

    비고 모텐슨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는 반지의 제왕으로 그의 주가를 거의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렇기에 상업성이 부족한 이영화는 그에게 모험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안목은 정확했고, 이제는 누구도 그를 대처할 없음을 부인할 없다.

     

    크로넨버그 감독과 일궈낸 ‘폭력’ 시리즈는 그였기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을 보고 싶었으나 예산의 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작품 만으로도 감독은 역량을 충분히 보여줬고 비고 모텐슨이라는 배우의 반지의 제왕 아라곤을 뛰어넘는 훌륭한 캐릭터의 발견을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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